공학도지만 글도 쓰고 싶어/문득 쓰는

믿는 구석

자네트 2021. 9. 15.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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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이 자신의 삶을 행복하다고 여기게 하는 조건에는 수많은 것이 있겠지만 이번에는 내가 요즘 가장 크게 느끼는 행복의 조건이 어떤 건지 써내려가보려고 한다. 최근 나를 붙잡아 주는 것, 지지해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돈이 뭐가 중요하냐들 말하곤 하지만 사실 일정 수준 이상의 안정적인 소득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데 아주 최적일 수밖에 없다. 지금 당장 먹고 살기 힘든데 사람이 행복을 쉽게 느낄 수 있을 리가 없다. 다만 주의할 것은 저 사람이 나보다 열 배의 수입을 번다고 해서 저 사람이 나보다 열 배 더 행복하다고는 단언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미 이 내용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연구한 결과가 나와있다.

 

구글 검색. 자세한 기사 내용은 https://www.joongang.co.kr/article/18878679

 

이 글에서 소득과 행복의 상관관계를 말하려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은 이 기사에서 확인 할 것. 아무튼간에 결과적으로 소득이 일정 수준을 넘으면 행복의 수준은 거기서 거기이거나 오히려 조금 내려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현재 아주 행복하며 일말의 불안이나 걱정조차 갖고 있지 않다. 그렇다고 내 연봉이 8500만원이냐? 그럴 리가 없다. (전 연령 근로소득자만 봤을 때 상위 10퍼센트에 근접하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보다 더 잘 버는 사람만큼이나 나는 행복하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기본적인 욕구는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일정 수준의 소득만 된다면 행복은 이미 다른 데에서 결정나는 것이다.

 

그러면 나를 지탱해주는 것은 대체 뭔데? 뭐가 있길래 주변에서 스트레스를 줘도, 가끔씩 장애물이 닥쳐와도 어떻게 그 멘탈을 유지할 수 있는 건데?

 

나는 그게 내게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뭘 해도 돌아갈 수 있는 곳. 내가 무너져도 쉴 수 있는 곳. 내가 뭘 해도 응원해주고 믿어주는 곳. 그런 것들이 다행스럽게도 나한테는 있다. '곳'이라고 표현했지만 공간이라기보다는 사람이다.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있으면 나 스스로 내게 확신이 생긴다. 그리고 반대로 내가 확신을 갖고 어떤 일을 하면 주변 사람들도 나를 믿어주는 선순환이 이루어진다. 실제로 똑똑한 사람은 자신이 똑똑하다고 믿음으로써 더 똑똑하게 행동할 수 있다고 한다.(멍청한 사람이 자신을 똑똑하다고 믿었을 때의 부작용은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 

 

그러니 까짓 누가 나한테 잔소리 좀 했기로서니 내 멘탈이 무너질 리 없는 것이다. <확실한> 내 편에게 이러쿵저러쿵 미주알고주알 떠들고 나면 웬만한 문제는 마치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내게서 사라져간다. 내가 뭘 해도 잘 할 것이라 믿어주고 내 말이면 다 맞다고 생각하는 가족과, 내가 누굴 욕하면 나보다 더 심한 욕과 함께 맛있는 걸 대령하는 동반인(?)이 있으니 내 스트레스는 통 하루를 넘기기가 힘들다.

 

난 회사에서도 쫄지 않고 윗사람에게 내 의사 표현을 아주 잘 하는 편인데 그 기저에는 <아 뭐 짜르든가 짜르면 이 일 할 사람 없고 어차피 못 짜르는 거 알음. 그리고 난 짤려도 다른 일 해서 돈 벌 수 있음>이라는 믿는 구석이 있다. 이 생각만 있는 건 아니지만 믿는 구석을 표현해본 것이다. 내 능력을 믿고, 내가 의사 표현을 한다고 해서 내가 건방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믿고, 설령 미운 털이 박힌다 해도 내 알 바 아니고 난 집에 가서 놀면 된다는 그런 믿는 구석에 대한 믿음이 강하게 발동하는 것이다. 오죽 안 쫄았으면 이미 내 윗사람도 내가 윗사람 본인에게 전혀 쫄지 않는다는 걸 이미 알고 있음….

 

내가 비록 타고난 기질이 이렇긴 하지만 그렇다고 언제나 이래왔던 것은 아니다. 암만 기질이 강해도 정신이 불건강할 때에는 나도 모르게 이 기질을 억누르게 된다. 그래서 한 때는 나도 내 본능과 정 반대로 행동하고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나를 의심하고 미래를 의심하던 시절. 불확실한 것들에 둘러싸여 그 누구도 무엇도 믿기 힘들었던 시절. 대개 누구나 취준생 시절엔 그럴 테지만 아무튼 암만 나라도 그랬던 적이 있었다.

 

다만 조심해야 할 것은 아무나 붙잡고 맹목적으로 믿어서도 안되고, 상호 신뢰를 쌓아야지 내 쪽에서만 일방적으로 멘탈 케어를 요구해서는 그 관계는 얼마 안가 무너질 것이다. <완벽한> 믿음을 구축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내 <믿는 구석>들에게 완벽한 믿음을 갖고 있다. 어리석은 행동으로 집구석을 날려버리지 않을 것이라 믿는 부모님과, 비록 소득은 조금 귀여워도 올바른 가치관과 도덕관을 갖고 있는 형제자매와, 성격은 제각각이지만 옳지 않은 일을 구분할 줄 알고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친구들과,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른대도 내 옆에 있어줄 것이라 믿는 예비반려자(?)와, 무슨 일을 해도 이상한 유혹에 빠지지 않고 잘 해낼 것이라 믿는 바로 나. (그리고 적정 수준의 소득)

 

이 정도인데 행복하지 않다면 더 이상한 거 아닌가? 오히려 이 수준에서 더 행복하지 않을 이유를 찾는 게 더 어려울 것 같다. 그러니 이렇게 중요한 것이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 올바른 행동에 대한 믿음 같은 것들이.

 

이렇다보니 내 유일한 걱정은 건강과, 준비되지 않은 죽음이 유일하다. 미래에 돈을 조금 못 번대도 당장 굶어죽지 않기 위해 현재의 소득으로 이것저것 준비할 것은 물론 있다. 착각하면 안 되는 것이 있는데 그건 바로 행복이 아무 준비나 대비 없이 온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말도 안되지 않은가! 누군가와 강력한 상호 신뢰 관계를 구축하면서도 미래에 대한 준비를 하면서도 친구들과 바람직한 관계를 맺어야 하며 남에게 피해는 끼치지 않아야 하고 그 와중에 효도도 해야 하며 건강도 챙겨야 하고 어디 가서 무시받지 않을 내 능력도 있어야 한다. 행복은 아무 것도 안한 사람에게 오는 것이 아니다. 이 모든 걸 다 대비한대도 끊임없이 장애물이 달려들 것인데 아무것도 준비 안 한 보통 사람이 '난 왜 행복하지 못하지...?' 하고 새벽에 베개를 적셔봐야 행복은 찾아오지 않는다.(금수저는 조금 열외로 한다. 그들은 준비 안 해도 날 때부터 재료는 있으니)

 

똑같은 상황에서도 다른 사람보다 행복감을 더 느끼는 사람도 존재하는데 이 소소한 것에서 행복을 찾는 눈에 대한 이야기도 언젠가 포스팅으로 남겨두고 싶지만 이번에는 믿는 구석에 대한 내용만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결론적으로 나는 소위 든든한 뒷배가 있기 때문에 웬만한 것들에 흔들리지도 않고 우울해지지도 않는다. 사람에게는 사람이 필요하다. 애초에 사회적 동물로 태어난 것들이다. 행복은 자존감과 직결되고 이 자존감이란 결국 다른 사람과의 유대에서 오르거나 내려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쯤되면 차라리 돈을 많이 버는 게 더 쉬울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내가 잘나서 이 사회적 기지를 잘 구축한 건지, 운이 좋아서 이 기지를 구축할 수 있었는지는 누구도 명확히 할 수 없겠지만, 어쨌든 요즘은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신경쓰려 노력하고 있다. 왜냐면 나는 이미 거의 갖췄거든. 그러니 가까운 사람들의 멘탈 케어를 조금은 도와주고 싶은 그런 생각으로 지내는 중이다.

 

현실이 운빨x망 게임과 흡사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누군가는 출발선부터 저- 뒤에 있었을 것이고 나는 태어날 때부터 어느 정도 유리한 상황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부정하면 안 된다. 그러니 얻은 만큼 베풀고 살자, 내가 믿는 구석들로부터 얻는 것처럼.

 

고마워 믿는 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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