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학도지만 글도 쓰고 싶어/리튼바이

The Color : 두려워하는 것

자네트 2020. 2. 29.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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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주 자주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지만 나는 아무래도 평균 이상으로 자주 죽음을 떠올리는 것 같다. 어제 퇴근하는 길 집 앞에서 하늘을 보면서도, 며칠 전 회사 비상 계단을 내려가면서도, 언젠가 지하철 손잡이의 감촉을 느끼면서도, 또는 그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올리면서도.

 

그럴 때 나는 나의 온갖 감각에 이질감을 느끼며 배와 명치 사이 어딘가가 일그러지는 느낌을 받는다. 손바닥 안의 차가운 금속의 느낌, 흔들리는 발밑의 지하철 바닥, 지하철이 달리며 내는 시끄러운 금속음, 핸드폰 속 내게 말을 거는 누군가의 텍스트. 그 모든 것에 순간적인 거리감을 느낀다. 그리고 생각한다. 내 생각, 내 감정, 내 기억, 내 능력, 모든 게 아무 의미도 없어지는 날이 오겠지. 내가 죽음에 아무리 저항하고 발버둥 쳐도 이 우주 자체가 죽는 날이 언젠가는 오겠지. 그러면 나는 잠깐 숨이 막히고, 무서워지다, 깊은 잠에 빠진 것과 아주 비슷할 것이라 자위하며, 이내 현실로 돌아온다.

 

그런 생각들이 일상에 지장을 주지는 않는다. 죽음에 대해 실감하려 할 때 드는 그 묘한 느낌들은 곧 사라지고 나는 오늘 저녁 메뉴를 고민하는 생각으로 곧잘 넘어가곤 한다. 그리고는 아무 생각 없이 맛있게 치킨 다리를 뜯거나 소곱창을 구워 먹는 것이다.

 

나는 죽어야 하기 때문에 내가 내 삶을 그르치지 않도록 노력할 수 있다고 여긴다. 죽기 바로 직전, 단 한 가지도 후회하는 일 없이, 이 정도면 행복하게 잘 살았다, 그렇게 가는 것이 내 목표다. 평생 열등감이나 비뚤어진 자기애의 한가운데에서 살다가 마지막 눈 감는 순간 후회하고 싶지는 않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감정의 골이 깊어지려 할 때, 내가 지금 이 사람을 상처입힌다 한들 마지막에 후회하는 건 나일 것임을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죽음 앞에서 그 선택을 돌아볼 내가 단 한 부분도 후회하지 않아야 함을

 

사소한 것들에도 기쁨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노년에 이르러 삶이 행복으로 충만할 것임을

 

내가 타인을 소중히 할 때 그들도 나를 소중히 여길 것임을

 

그런 것들을 나는 죽어야만 하는 인간으로서 믿고 나아가는 것이다.

 

죽음을 앞두고 누구나 삶을 되돌아볼 것인데, 그럴 때 내가 살며 주고받은 것이 오만함과 가식과 질투 같은 것들이라면 얼마나 공허하고 허무할지. 치기로 저질렀던 철없는 행동들이 그 순간에는 얼마나 무의미한 것들이었는지를 깨달을 때. 나는 그것이 무서운 것이다. 내 삶은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깨닫는 순간이 너무 늦었을 때.

 

바로 내일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떠올릴 때, 바로 오늘의 행동에 아무 후회가 없기를 바라며 나는 하루하루에 임한다. 예를 들면 화가 치밀어오를 때 생각하는 것이다. 내가 오늘 화가 난 상대에게 내 분노를 잘못된 방법으로 표출하고 연락을 두절했는데 바로 그 다음 날 죽어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린다면 어떨까. 나는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울고 만다.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은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나도 상대도 상처만을 남긴 채 서로를 잃어야 하게 될 것이다. 그런 상상을 하면 나는 자연스레 화가 누그러진다. 나는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 진심이어야 한다. 내가 당장 내일 죽을지도 모르니까.

 

사실 그렇다고 내가 득도를 했거나 성자도 아니고 백 퍼센트 그 신념을 관철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냥……노력하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실수를 줄이기 위해. 그리고 내 선택에 책임을 지기 위해.

 

죽음은 보통 검은색으로 상징된다. 미지의 색, 의 색, 어둠의 색, 종말의 색.

 

오늘도 나는 죽음을 무서워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게 나의 삶의 원동력임에는 변함이 없다. 누군가는 어차피 죽을 인생 막 살면 어떠냐고 생각할지 모른다. 어쩌면 그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혼자 고지식한 잣대로 나 자신을 재단하는지도.

 

그러나 지금 내가 행복함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난 충분히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끝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뜨끈한 마라탕 국물에, 내 머리를 쓰다듬는 큰 손에, 오랜만에 흩날리는 눈발에, 발에 밟히는 낙엽에, 말도 안 되게 웃기는 인터넷 썰에, 수십 번을 반복해서 듣는 좋아하는 노래에 행복해하면서.

 

나를 표현하는 색을 한 가지 고르라는 게 결코 쉬운 요구는 아니지만 굳이 골라보자면 검은색으로 해도 괜찮지 않을까. 다채로운 색들로 가득 차서 마지막은 검은색으로 물드는. 아무것도 없는 색이 아니다. 너무 많은 색을 넣고 싶어서 욕심내다 보니 검은색이 된 것이다. 어쩌면 검은색으로 나타나는 죽음과도 일맥상통하지 않은가 싶다. 누구보다 죽음을 두려워해서, 누구보다 빨리 죽음을 준비하는 삶의 태도와도.

 

그렇게 채워가자.

행복은 찾아오는 게 아니라 내가 만드는 거더라.

그게 내 삶을 채우는 색이다.

 

 

 

 

 

 


리튼바이 s4 마지막 주제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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