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학도지만 글도 쓰고 싶어/리튼바이

집에 가고 싶다

자네트 2020. 3. 13.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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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라는 공간에 큰 애정을 붙인 적이 없다. 유년 시절 울산 2. 서울 2. 충청도에서만 이사 네 번. 기숙사 1. 자취 2. 자취 중 이사 한 번. 다시 서울 올라와 자취 2년 차. 그사이에 이사 한 번. 누군가에겐 적고 누군가에겐 많겠지만 적어도 나한테는 잦은 이사였다. 일이 년에 한 번씩 이사 다니는 것도 이제는 익숙해졌다. 한 집에 가장 오래 살았던 게 10년 정도인가보다. 딱 초등학교 중학교 다닐 시절.

 

그동안 혼자만의 방을 가질 수 있었던 건 자취할 때뿐이었다. 그 외에는 동생과 계속 한방을 썼었고 지금도 본가에 가면 동생과 방을 같이 쓴다. 기숙사는 41실이었고 지금도 룸메(?) 집에 얹혀살고 있고, 그나마 고등학생 때 2년 자취할 때도 1년 정도는 룸메이트가 있었으니, 내 인생에 나 혼자만의 방이 있었던 건 딱 1년뿐이었던 거다. 와 그것 참. 나도 방금 깨달았는데 꽤나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네.

 

모든 컴퓨터 전공자가 그렇진 않았겠지만, IT인력으로 일하고 있는 지금의 내가 돌아보기엔 좀 당연한 수순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윈도우 98 시절 이제 막 열 살 즈음이었는데 그때부터 책과 컴퓨터가 내 세상이었다. 그때부터 그냥 게임만 할 줄 아는 게 아니라 설정 및 제어를 할 줄 알았던 터라 초등학생 때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반 컴퓨터는 전부 내 담당이었다. 기억들 하는가. 교단 선진화 학생이라고 그런 거 있었다. 컴퓨터에 문제가 생겨서 내가 만지고 있자면 꼭 반 등수 뒤에서부터 세는 게 더 가까운 친구들이 내게 물어보기도 했다. 너 사실 모르지? 우스운 일이었다. 우리 아빠가 컴퓨터 엔지니어였고 난 기계 오류가 아닌 이상 웬만한 건 혼자 고쳤었는데. 난 어릴 때도 그 사실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밖에 나가 노는 것보다 집에서 책을 읽고 컴퓨터를 하는 게 더 좋았다. 덕분에 열 살부터 안경을 꼈다. 그래서 내가 방에서 하는 일은 정해져 있었다. 책 읽기, 컴퓨터 하기, 이불 속에 파묻히기. 이사를 자주 다녀서 특별히 추억이 담긴 물건이 많지는 않다. 특히나 독립한 지금은 정말 사는 데에 필요한 것만 내 방에 있는 중.

 

자주 거처를 옮겨 다녀서 그런지 잠자리를 크게 가리지도 않는 편이고 환경 변화에 예민하지도 않은 편이다. 방에 대한 기대치도 그다지 높지 않고. 그저 햇빛이 살짝 들고 내 한 몸 누일 수 있는 공간에 이불과 컴퓨터만 있으면 완벽한 것이다.

 

그리고……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는 이 나이 먹고도 혼자서는 잠을 잘 못 잔다. 잠자리가 어디인지는 상관없고 내가 혼자만 아니면 되는 것이다. 혼자서도 잘 수는 있는데 뭔가 딥슬립이 안된달까. 누군가 있으면 잘 자는데, 굳이 그 사람이 내 옆에 누워 있을 필요는 없다. 그냥 방 안 어딘가에 존재하고만 있으면 잘 잔다. 그 사람의 존재감으로 안도가 된달까.

 

내 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이불 속에 파묻히기, 핸드폰으로 세상 모든 정보에 접근하기, 컴퓨터를 켜 좋아하는 게임을 하루 종일 하기, 치킨을 배달시켜 무방비한 모습으로 누군가와 닭다리 뜯기(저번 글에서부터 느끼지만 나는 참 치킨을 좋아하는 듯하다), 드러누워 영화나 애니메이션 보기, 배경음악을 깔아 놓고 책 읽기. 혹은 합의 하에 한 방에서 서로 다른 일 하기. 이 정도가 있겠다. 요즘 사람들과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다들 집에서 하는 일이 거기서 거기고 그러니 넷플릭스나 웹드라마가 이렇게 성행할 것이다.

 

온전한 나. 내 방에서는 온전한 나로 돌아가는 것이 가능하다. 내 방은 나의 목적이 아니라 플랫폼이다(대체할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개발자의 단어 선택의 한계를 용서 바란다). 어느 한 곳에 구애되지 않고 내가 편하게 머무는 곳이라면 그곳이 내 방이 된다. 내 방을 통해 자신에게 오롯이 집중할 수도, 다른 세상으로 시야를 돌릴 수도 있게 된다. 이번 주제는 내 방 여행이었는데, 엄밀히 말하면 내 방으로 여행을 떠나는 게 아니라 내 방을 통해 여행을 하는 셈이다.

 

좀 우습게도 내 방에서의 온전한 나를 지향하는 주제에 혼자서는 못 잔다고 했다. 누군가 구성원이 있어야 마음의 안식(?)이 찾아오곤 한다. 그렇다고 아무나 내 방의 구성원이 될 수 있지는 않다. 나를 온전하게 드러내도 괜찮은 사람만이 내 방의 한 요소가 되는 것이다.

 

지금의 내 방은 살게 된 지 이제 막 반년쯤 된 것 같은데 난 이미 그 방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져 있다. 가끔씩 본가에 내려가는데 오히려 그 집에서 자는 게 낯설어졌다. 4년이나 매일 잠들고 일어났던 방인데도. 지나간 방에는 참 미련이 없다. 쿨하다고 해야 할지, 정이 없다고 해야 할지? 어디 놀러 다니기엔 딱 좋은 체질임에는 분명하다.

 

무언가 한 가지에 큰 의미를 두고 살지도 않지만, 거의 모든 것에 의미가 있다고 믿으며 산다. 나를 나로 만드는 달콤한 공간. 본래 기질이 집순이이고, 요즘은 자의가 아닌 타의로 방에 머무르는 시간이 늘어났지만 종종 이런 시간도 썩 나쁘지만은 않다. 어제는 침대 매트리스와 베개를 바꿨는데 천국이 따로 없었다. 방 안에서도 소소한 기쁨 찾기는 언제든 가능하다. 그게 내 방에서 누릴 수 있는 나만의 세상이랄까.

 

넓고 비싼 것들로 가득한 방은 그 나름의 멋과 가치가 있겠지만, 다소 좁은 공간일지라도 그 안에서 소중한 것들과 다정한 시간을 누릴 수 있다면 아늑한 내 방으로 인정하겠다. 세 들어 사는 지금의 내 방도 몇 년 후면 다른 사람이 쓰게 되겠지만, 나는 또 다른 방에서 옷을 벗어 던진 채 전기장판과 에어컨을 동시에 틀고 누워 있을 것이다. 최고로 자유로운 느낌이다. 세상 어디서도 느낄 수 없는, 완벽하게 자유로운 나.

 

, 집에 얼른 가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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