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학도지만 글도 쓰고 싶어/리튼바이

우는 여자

자네트 2020. 2. 14.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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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오늘이 마지막이에요.”

 

여자는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아, 그래요. 남자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여자 앞에 놓인 찻잔에서 모락모락 김이 피어올랐다. 여자의 한쪽 손끝은 규칙적으로 테이블을 약하게 두드리고 있었다. 여자의 눈빛에는 초조함이 서려 있었다.

 

“언제 출발하시죠?”

“내일 이른 아침이에요.”

“오늘도 곧 들어가셔야겠군요.”

 

마주 앉은 둘의 시선은 어쩐지 엇갈린 채였다. 남자는 그의 왼편, 그의 그리다 만 캔버스들이 놓인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고 여자는 앞에 놓인 찻잔만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고맙다는 말을 하려고 왔어요, 오늘은.”

 

여자는 한번 숨을 고르고 말했다. 그들의 대화는 간격을 들여 느릿하게 이어졌다. 약간의 침묵과, 흔들리는 눈빛에서 나오는 묘한 긴장감이 그리 넓지 않은 방 안을 채웠다.

 

“공작부인도 당신이 그린 초상을 맘에 들어 하셨고, 또……제가 그간 매일 귀찮게 굴었는데도 친절하게 대해주신 것에 대해서요.”

 

여자는 내내 굳어 있던 표정을 잠깐 풀고 미소를 지으려 애쓰는 듯 보였으나, 말을 마치고는 곧 다시 원래의 기운 없는 표정으로 돌아갔다. 남자는 여자의 표정이 바뀌는 것을 분명 보았다. 그러나 그 이유에 대해 감히 언급할 수는 없었다.

 

“……영지로 돌아가면, 결혼한다고 하셨죠.”

 

찻잔을 들려던 여자의 손이 멈칫, 떨렸다.

 

“예.”

“공작께서 직접 혼사를 맺어 주셨다구요.”

“……예.”

 

여자는 찻잔을 입에 대지 않고 내려놓으며 머리카락을 정리하는 것처럼 고개를 푹 숙였다. 남자는 말이 없었다. 고개를 떨군 채 한참 머리를 매만지던 여자는 눈가를 검지손가락으로 꾹 누르며 다시 고개를 들었다.

 

“마지막으로……부탁이 하나 있어요.”

 

그 말을 들은 남자는 굳은 표정으로 일관하던 지금까지와 다르게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며 여자를 바라봤다. 여자는 웃어 보였으나 눈빛까지는 그러지 못했다.

 

“제 초상을 하나 그려주셨으면 해요.”

 

남자는, 그녀의 미소가 버겁도록 힘들게 느껴졌기에, 사족을 달지 않고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가 그림을 그리는 동안 여자는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가끔 드레스가 구겨지지 않도록 소매와 치맛자락을 가다듬으며 미소를 지은 채 남자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여자의 표정이 조금씩 힘을 잃어갈 때마다 남자는 여자에게 말을 걸었다. 며칠 전에 갔던 언덕의 경치가 참 좋았죠, 따위의 말을. 그러면 여자는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네, 좋았죠, 하고 말했지만 그 이상 말을 이어가지는 않았다.

 

“다 되었어요.”

 

남자의 말이 끝나자 여자는 꾸벅 인사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자는 아직 이젤 앞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그는 어쩐지 한동안 그림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마음에 들지 않으세요?”

 

남자가 움직이지 않자 여자가 다가와 물었다. 남자는 그제야 고개를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직접 들고 가십니까?”

“아뇨, 저…….”

 

그림을 내려다보는 여자의 말이 서서히 늘어졌다. 그림 속의 자신을 보며 어떤 복잡한 감정에 사로잡힌 듯 했다.

 

“이 그림……보관을 해주세요. 제가 가지러 올 때까지…….”

“언제……오시나요?”

“언제가 될진……모르지만…….”

 

여자의 낯빛에 순간 그늘이 드리워졌지만, 그녀는 입술에 힘을 주며 웃어보였다. 남자도 그걸 알고 있었다. 여자의 시선이 남자에게로 돌아왔다.

 

“갈 때가 되었어요. 부디……부탁드려요.”

 

그녀의 시선은 남자에게 끈덕지게 들러붙어서 떼어내는 데에 힘이 드는 듯 했다. 남자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를 배웅하러 나섰다. 문 앞에서 그들은 말없이 눈짓으로 작별의 인사를 나누었다. 이윽고 여자가 무거운 발걸음을 돌려 밤의 거리 속으로 떠났고, 남자는 잠시 문을 닫지 않은 채 아마도 남자에겐 마지막이 될 여자의 뒷모습을 우두커니 서서 바라보았다.

 

여자가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남자는 집 안으로 돌아와 채 마르지 못한 여자의 초상화를 바라보았다. 그림을 그릴 때 여자는 계속해서 미소 짓고 있었다. 그리고 남자는 그런 여자의 모습을 그림에 고스란히 옮겼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림 속의 여자는 울고 있었다. 처절하고 처절하도록 눈빛에서 슬픔을 흘려내고 있었다. 그가 그려낸 여자였다. 도저히 남자는 알 수 없었다. 웃고 있는 여자를 그렸는데, 왜 그림 속의 여자는 울고 있는 것인가?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고 있던 남자는 어느샌가 자신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그래, 울고 있던 것은 남자였다. 그는 자신의 울음을 남김없이 담아낸 그림 속의 여자를 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다시는 만날 일 없을 여자를 위해 한동안 울었다.

 

 

 

 

 

 


위 세 그림을 소재로 한 픽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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